pistris
하다(@hada_cms)님의 커미션입니다.
한때 항구가 발달했다는 마을은 근래에서는 무역업이 쇠퇴하고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마을을 둘러싼 깊은 숲은 오고가는 상인이 줄어들어 나있던 길마저 수풀이 우거져 길을 덮었다. 누군가는 이것을 보고 생명력이 강한 땅이라 감탄했지만, 농작지로 개간하기에 쉽지 않은 땅이었다. 두 면이 마을 사람도 길을 잃을 정도로 어둡고 넓은 녹음이라면, 다른 한 면은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러니 외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곳은 한곳 뿐이었다. 그것마저도 긴 해안선을 따라 오래 걸어야 했으므로 실질적으로 외부와 소통이 쉽지 않은 폐쇄적인 마을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바다괴물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왔다. 어떠한 이름도 없이 그저 바다괴물 혹은 고래 정도로 불리우던 것의 형태는 이야기꾼에 따라 달라졌다. 공통적인 점은 검고 입이 크다는 것 정도였다. 특히 그 입에 대한 것은 징그럽다거나 추악하다거나 온갖 달갑지 않은 묘사만이 달라붙었다. 그 입안에는 수도없이 많은 뾰족한 이가 달려 있다거나 그 안에 사람의 얼굴이 있다거나 하는 누가 보아도 왜곡되거나 애들 겁주려고 만든 이야기가 분명한 것들이었다. 무슨 의도였건 잠깐의 흥미 정도는 끌어서 그럭저럭 시간을 죽일 정도는 되었다. 짧은 다리가 마차의 흔들림에 따라 달랑거렸다.
열린 작은 창을 통해 보이는 담쟁이가 기어오른 오래된 저택이 보였다. 한동안 구경하러 돌아다닐 정도는 되겠다. 그정도의 평가였다. 오랜 기간 방치되던 이 땅은 자신의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오는 거라던가. 마을도 좋을만한 구석이 없었다. 급속도로 발전해가는 도시의 문명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이런 곳이 재밌을 리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것에 익숙해진 아이라면 더더욱. 밝은 조명, 활기찬 소음, 어딜 가든 색다른 일이 넘치는 도시에서 끌려나와 이런 시골 한구석에 박힐 운명임을 안 이후로 지겹게 가문이나 저택 따위를 들었으나 잘 듣진 않았다. 기억나는 게 없는 걸 보니 중요한 건 없었으리라. 단순히 결론을 내리고는 턱을 괴었다. 덜컹거릴 때마다 몸이 같이 통통 떴다. 또래로 보이는 이도 없고, 대부분의 젊은 사람은 도시로 상경하여 다 죽어가는 이들이나 남은 마을을 무엇하러 살리고 싶어하는지. 유대감이라곤 없는 제 부모의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발에 돌이 하나 채여 멀리 날아가다 이내 데굴데굴 굴렀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마차도 가끔 끊기는 이 낙후 지역은 정이 들래야 들 수 없었다. 처음 왔을 때부터 마을의 모습을 보고 예상한 바였지만, 짜증이 안 날 수는 없었다. 마을 곳곳에서 키우는 소동물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함부로 가져다가 이것저것 해보았다간 금방 꼬리가 밟힐 거라 할 수도 없었다. 지루한 아이의 사고는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자잘한 생각은 곧 처음 떠올렸던 것으로 돌아갔다. 이 바다괴물에 대해서 특이할 정도로 다른 묘사를 하는 노파가 하나 있었다. 정확히는 아버지의 어머니, 할머니라고 불려야 할 사람이었지만 관심 없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사람이었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렇고 검게 변한 이로 엉덩이를 두드리며 똥강아지라던가 그런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그렇게 듣기 싫진 않았던가. 이상한 사람이었다. “숲속에는~.. 마녀가 산다는데, 음! 어쩌면 마녀일지도 모르지..~” 때때로 흥얼거리듯 중얼거렸다. 늙은 마녀가 해준 이야기는 꽤 흥미로워서 자주 그 집으로 갔다.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이 마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악마 같은 존재, 바다괴물에 대한 것이었다. 바다의 풍랑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배를 망가뜨리면서 사람을 잡아간다는 그런 통속적인 이야기였다.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랬다. 지금에 와서는 바다괴물에게 검고 추악한 같은 묘사를 많이 붙이지만, 그건 다 오해였다. 그것은 두려움을 주지만,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 생물체라고.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인간이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워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었더니 뭐라고 했더라. 머리를 긁적였다. 어렸을 적, 어른들 몰래 직접 보았다며 한쪽 눈을 장난스럽게 찡긋거리며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속삭였었다. 비밀 이야기는 재밌으니까 더 집중했던 기억이 있었다. 이제부터 하는 이야기는 전부 비밀이란다. 새로운 이야기에 흥미를 보일 법한 나이였기에 아닌 척 반짝이는 눈을 감추지 못하고 이야기를 재촉했다.
바다괴물이라 불리우는 생명체는 사실 인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었고 감정이 없는 것처럼 표정이 없었지만, 바다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끌어다가 뭍으로 올려놓았다. 자신이 본 날도 바다에 빠진 마을 사람을 뭍에다 끌어놓다가 마을 사람들이 발견한 날이었다고 했다. 곧 풍랑이 몰아칠 정도로 어둑어둑한 밤바다에 사라진 마을 주민을 찾으려 횃불을 들고 모두가 급히 돌아다녔다. 어른들이 부산스러운 탓에 잠이 오지 않아 몰래 빠져나왔고, 보았다고 했다.
사람을 뭍에 끌어올려놓던 길게 기른 검은 머리카락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반인반어의 생명체를. 그것은 분명 자신이 주변에 숨어있는 것을 알고 시선이 마주쳤음에도 모른 척했다. 아마도 자신을 배려한 것일 거라고 웃으며 말했었다. “아핫,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꿋꿋이 토를 달기도 했다. 그러면 그러느냐고 하면서 마저 이야기했다. 발견한 마을 사람들로 인해 밝아진 횃불, 빛이 들지 않는 검은 눈이 인상적이었다고. 아가미를 닫은 채 사람들을 바라보다 바다로 돌아가려는 그를 사람들이 붙들 듯 이것저것 말을 건넸다고 했다. 어린 자신이 보기에 인어는 사람과 말을 섞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으나 포기한 사람들이 그럼 은인의 이름이라도 알려달라는 말에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입을 열었다고 했다. 그 이후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 아름다운 인어, 세이렌 같은 것으로 남았을 전설 속의 생물이 추악한 검은 바다괴물로 변했다. 인어가 말을 하려는 것처럼 입을 벌렸을 때 이리저리 횃불이 흔들려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곳곳에서 비명과 함께 괴물이라는 표현이 튀어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횃불 하나가 인어에게 겨눠졌고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풍덩, 무언가 바닷속으로 잠겨드는 소리가 들린 것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그날 이후로 인어는 이 마을의 해안가에 나타나지 않았단다.” 지금도 이 주변에 살아갈지도 모르지만, 보통이라면 자신을 해한 사람에게 전과 같은 호의를 품고 있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그저 저주하지 않고 돌아가준 것만으로 고마워해야 한다고. 만날 수 있을까, 란 질문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며 머리를 쓰다듬던 주름진 큰 손은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떴다. 그때부터 인어를 직접 보고 싶다는 흥미가 마음 속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바닷가를 자주 찾다보니 시간이 자연히 흘렀고 당연히 그만큼 자랐다. 인어의 비늘 한 조각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이곳에 남아 달라지는 마을을 구경했다.
바닷가와 닿아있는 숲은 아직 살려두었지만, 마을 뒤쪽 숲은 전부 나무가 잘려나갔다. 밑둥만 덩그러이 남아 다 죽은 땅처럼 보이던 게 개간되고 인간이 먹을 수 있는 파릇한 새싹을 틔웠다. 해안가에서 매번 뚝딱거리더니 어느새 썩은 나무 판자는 다 사라지고 멀끔해진 부두에 배가 드나들기 시작했다. 한때는 이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인어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불만이 있기도 했다. 배가 드나든다고 해서 어업이 죽은 것도 아니었다. 전보다 생선이 더 잘 나간다고 그랬다. 마을에는 새로운 얼굴을 항상 볼 정도로 사람이 유입되었고 온갖 상인이 들락거렸다. 그러니 숙박업이 발전하고 상권도 발전했다.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사람, 많은 것이 새로웠지만, 흥미는 금방 일었다가 식었다. 마을이 다시 부흥기에 들어서자 나이 먹은 노인들은 하나같이 그 바다괴물이 다시 나타날 거라며, 마을을 저주할 것이 분명하다며 헛소리를 해댔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런 생각따위를 했다.
커간다는 게 그렇게 즐거운 일만 있지는 않았다. 자라날수록 자식놈이라고는 하나 낳은 탓에 다 물려주려고 하는 게 여간 귀찮았다. 숫자가 오고가는 건 재미가 없었다. 골려먹거나 사기치는 거라면 흥미롭지만. 어찌되었건 미래를 위한 교육이란 명목으로부터 쉽게 도망칠 수 있진 않았다. 없는 자식 취급해줘도 나쁘지 않을 텐데. 부모 얼굴 볼 일보다 가르치겠다는 선생이나 시중 드는 이들이 얼굴이 더 생생히 기억났다. 대부분 짜증내거나 성질 내는 얼굴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보는 재미가 있어서 기억하는 편이었다. 이번에도 온갖 성질을 내고 있겠지. 막을 수 있는 건 부모 정도라 일로 마을을 떠나 있는 동안이면 심심치 않게 저택을 빠져나가 숲으로 도망쳤다. 공부는 지루했고, 상권이니 뭐니 관심없었고 겸사겸사 선생들을 골려먹으려는 거였다. 풀을 스치고 지나가는 발자국은 근래에 찾아낸 비밀장소로 향했다.
바닷속에 일부 잠긴 큰 암석이 서있고 그 주변을 나무와 풀숲이 드리워져 가려지는 곳이었다. 한쪽에는 그리 깊지 않은 바다동굴이 하나 있고 바닷물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생각보다 수심이 깊어 함부로 수영할 수는 없는 곳이었다. 완벽한 비밀장소,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고 비밀장소인 탓에 자주 찾긴 했지만, 실상 그 이유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끔뻑거리는 눈이 며칠 전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수심이 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파도가 치는 것도 아니고 한번쯤 수영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없을 거란 오만이었다. 그러니 별다른 고민없이 몸을 담갔고 그것이 멍청한 짓이었음을 안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천천히 가라앉으며 뿌연 시야로 물속을 살피고 있었다. 기포가 뽀르르 앞을 스치고 위로 올라간다. 물속에서 올려다보는 수면은 생각보다 어두웠고,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다보니 올라갈 때를 놓쳤다. 디딜 암석이 없어 다리를 휘젓고 손을 위로 뻗어 올라서야했다. 찌릿, 하고 한쪽 다리에 신경이 심장처럼 두근두근 뛰는 것이 느껴졌다. ‘아, 위험~..’ 위기감이라고는 없는 감상을 속으로 주절거리며 덜덜 떨리는 다리를 무시하고 위로 향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입에서 공기방울이 크게 터져나왔다. 이렇게 어이없게 죽나, 그 순간 든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시체도 발견 못 되고 썩어서 죽겠구나 하는. 그냥 눈을 감던 차였다. 감으려고 했던 건지 자연스레 감기려던 건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무언가가 주변을 오갔고 입을 덮는 것에 숨이 채워졌다. 서늘한 것이 눈을 가렸다. 그뒤에는 몸이 빠르게 수면 위로 올려졌다. 켈록 거리며 들이찬 물을 뱉고 산소를 들이쉬며 물을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검고 추악한 바다괴물, 인간에게 호의적인 인어. 서로 다른 명칭이 머릿속을 스쳤다. 분명 그것이었다.
그간 오가며 많은 시도를 했다. 빵을 부스러뜨려-물고기는 빵쪼가리를 좋아하는걸~!..- 수면에 떨궈보거나 돌을 던져보기도 했다. 미친 사람처럼 수면에 대고 말을 건네어보기도 했고, 자는 척 하면서 수면을 곁눈질하기도 했다. 결과는 당연하다시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인어라고 한들 내내 여기 있을 리도 없어서 며칠 시도해보았지만, 진전이 없어 삐뚤한 마음이 들 참이었다. 열 다섯 살이나 먹었으니 삐뚜름해질 좋은 나이 아닌가.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물가를 서성거리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여전히 물속은 보이지 않고, 인어도 보이지 않는다.
‘아- 다시 빠져보면 되는 거 아닌가~..’ 부산스럽게 오가던 발이 멈췄다. 왜 이렇게 좋은 방법을 지금에서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생각이 났고 그것이 마음에 들었으면 주저하는 성정이 아니었다. 기분좋게 올라간 입꼬리를 확인하기도 전에 물보라가 일고 무게를 가진 것이 물속에 빠지는 소리가 났다. 가늘게 뜬 눈은 여전히 시야가 뿌옇다. 몸을 던지듯 들어갔더니 공기방울로 시야가 장악당했다. 하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있다면 분명 주변에서 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자신이 할 일은 이대로 깊게 가라앉다가 못 올라가는 척만 하면 됐다. 연기에 자신이 있냐고 한다면 다 티나서 보는 사람이 열받으란 식으로 굴었기 때문에 잘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정 연기가 걸린다고 해도 실제로 숨이 막히면 될 문제라 입을 벌렸다. 머금고 있던 공기가 다 빠져나가고 곧 금방 숨이 막혀왔다. 주변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운 나쁘면 이번에야말로 죽겠다 싶었다.
동굴 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아득해지는 시야 한켠에 잡혔다. 그것은 주저하는 기색 없이 가까이 다가왔다. 정확한 모습을 알 수 없지만, 길고 가는 것이 물의 흐름에 따라 너울거렸다. 잠시 지켜보는 듯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멈추어서있다가 조금 움직인다 했을 때 이미 코앞에 다가와 그때처럼 차가운 것이 입에 닿고 숨을 넘겼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하는 척, 그것은 곧 허리를 감싸고는 품에 끌어안았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몸짓과는 별개로 빠른 속도로 수면에 시시각각 가까워졌다. 물 밖으로 나갈 때쯤 힘없이 달랑거리게 둔 팔을 뻗어 서늘한 몸을 끌어안아 붙들었다. 놀란 건지 안고 있던 팔을 놓은 그것은 내가 달려있다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잠시, 콜록, 콜록... 잠시마안~!.. 안 잡아먹을 테니까. 으엑.. 짜... 아니이.. 도망가지 말아봐..-”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입을 열었다는 것에 멈추어선 건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그만두었다. 대신 끌어안은 팔을 천천히 떼어내어 나를 뭍으로 올려놓았다. 푹 젖은 머리카락이 시야를 방해하는 탓에 대충 옆으로 치우거나 위로 쓸어올리고는 눈 주변의 물을 닦았다. 기침을 몇 번 더 하고 또렷해진 시야로 바라보니 뭍에서 좀 떨어진 곳, 손이 닿지 않을 거리에서 눈만 내놓은 까맣고 둥근 머리가 보였다. 까맣다던 눈은 사이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빛이 닿음에도 다 삼켜버리는 혹은 닿지 않는 심해처럼 검었다. 의중을 알 수 없고 시선이 닿지 않을 때면 정확히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을 정도라서. 피부는 그와 반대로 희푸르고 입술을 검푸른빛이 돌았다.
“그렇게~.. ...경계 안 해도 되는데..! 잡아먹혀도- ...내가 먹히는 거 아닌가~?..”
감정이 없어보였다는 말처럼 검은 눈은 나를 보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이 상황에 대한 경계심이나 감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인간에게 호의적인 인어라고 푸근한 미소를 짓던 노파의 얼굴을 떠올렸다가 속으로 혀를 찼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동정심 같은 것을 느끼고 구한 것이 아니었다. 육지의 생물은 물속에서 숨을 못 쉰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뭍의 것을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놓는 행위에 가까웠다. 말을 건네도 무언가를 하지도 않고 그냥 보기만 하는 눈을 같이 빤히 마주보며 젖은 옷을 짜냈다. 또 젖었다고 잔소리를 잔뜩 들을 게 분명했다.
“저기..~ 말 안 할 거야? 혹시 말 못한다거나-?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알아듣기는 해~~?” 한숨을 내쉬었다. 이가 다닥다닥 흔들릴 정도로 추위가 몰려왔다. 추운 건 질색인데~!.. 내가 그간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아냐는 둥 온갖 투덜거림을 뱉었음에도 그것은 말을 못 알아듣는 생물처럼 바라보기만 했다. 괜한 헛수고였나. 흥미가 팍 식는 기분이었다. 강아지에게 말 거는 게 더 재밌는 일일 것 같았다. 코를 훌쩍였다. 이러다 감기 걸리기 좋단 생각에 바람이 스칠 때마다 부르르 떨면서 일어났다.
“...됐어~! 있다는 거에 만족할래..- ...”
그렇게 말하고 나니 그간 개고생한 게 아까웠다. “...진짜 아무말도 안 할 거야~?.. 나.. 엄청 노력했는데--..” 여전히 말이 없었다. 물기를 뚝뚝 떨구는 머리카락을 짜내며 돌아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그러다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떤 말에도 답하지 않다가 이름을 물었을 때에서야 입을 열었다는. “으응... 그러고보니 생명의 은인인데!.. 이름 정도는, 알려줘도 되지 않아~?” 별다른 기대없이 돌아서는 귓가에 수중에서 사는 생물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건조하고 메마른 목소리가 심해의 기저를 기어다니듯 음울히 들려왔다. “피스트리스.” 뒤를 돌았을 때는 얇은 꼬리 지느러미의 끄트머리가 퐁 하고 작은 물방울을 튕기며 사라진 뒤였다. “아핫, 하아.. 말할 수 있잖아..~~” 곧 만족스러운 웃음소리와 함께 그런 말이 뱉었다. 곧 춥다고 오두방정을 떨며 그곳을 떠났다.